이 글은 2019년 11월 18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자기 합리화
지난 삼, 사주 정도 자기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변명거리를 많이 생각했었다. 나 자신을 객관화해서 나를 말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리스크를 상상해도 자기 합리화하는 나 자신을 보고 더 이상 방법이 없구나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 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마음이 그렇게 정했다. 그래서 사표를 내버렸다. 이미 마음이 떠서 더 이상 일에 집중할 수 없었고, 회사에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출근 날짜는 2019년 12월 13일로 정했다. 이제 정리를 하고 회사를 떠나는 일만 남았다. 진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희희
무료함과 무력감은 어디에서 오나?
사실 이직을 할 때 큰 실수를 한 것이 있다. 내가 이전 회사에서 했던 업무를 100% 활용할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해버린 것이다. 클라우드 ERP를 만들던 회사에서 일하던 내가 다른 회사에서 ERP를 만들고 있으니 일이 무료해지고 무력해질 수밖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었다.
개발자 10년 차. 확실히 일을 하며 예전의 즐거움을 찾을 방법은 없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분명히 지금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있다. 더 공부하고 더 조사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산더미다. 매일같이 트렌드를 쫓기 위해 깃헙과 스택오버플로우를 기웃거린다. 새로운 미트 업이 없는지 커뮤니티를 찾아본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설치를 해봐야 하고 이거다 싶으면 책도 산다. 하지만 예전처럼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가 많이 줄었다. 반복에서 오는 무료함인가?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업무도 익숙해지다 보니 결과를 내는 게 당연한 포지션이 되었다. 스스로 일을 만들고, 배분하고, 대응하고,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바로 최우선 과제로 삼아 해결한다. 나의 일은 이것의 반복이다. 새로울 것이 없는 과제지만 얼마든지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한 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어느덧 업무가 당연한 일을 당연히 해내는 것이다 보니 노력과 성과에 대한 보상, 격려, 관심이 줄면서 나도 흥미를 잃게 된 듯하다.
인생은 크게 나눠서 삶과 일이 아닐까 싶다. 일은 삶의 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떤 면으론 확실하게 삶과 구분을 할 수도 있다. IT업계, 특히 개발자는 삶과 일의 경계가 없는 대표적인 업종이 아닌가 싶다. 일하지 않는 시간, 즉, 집에 와서도 자기를 위해 코드를 읽고 써야 한다. 최근 그 빈도가 거의 없다시피 줄었다. 게을러진 것이다. 날마다 죄를 짓고 사는 듯한 중압감을 받으면서도 뭔가를 하려는 의지, 열정을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이 미워졌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한번 고민해봤다.
세상은 삶과 일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 입장(개발자)에서 이 말은 일이 취미여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여기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 싶지만, 이 또한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될 테니 이 정도로 줄인다)
이제는 물러날 때
문득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큰 수술을 맡겨야 하는데 의사의 연차 정보밖에 모른다. 5년 차 의사와 15년 차 의사가 있다. 당신은 어떤 의사에게 수술을 맡길 것인가? 하는 이야기다. 실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차가 높을수록 사망률이 더 높았다고 한다. 이 조사는 전제조건이 중요해서 환자의 상태가 중요한 조건이 되는데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서 조사했음에도 연차가 높을수록 사망률이 더 높았다고 한다. 이건 다른 분야에서도 적용되는 이론인데 더 많은 사례와 표본으로 놓고 봐도 결과는 같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개인의 발전이 업계의 발전을 추월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실력이 경력에 비례하지 않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로 확실시되어 있다.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신입사원들이 들어오고 코드를 리뷰해주고 당연한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들의 자세에 깊은 감명을 받곤 한다. 경력이 쌓이도록 가만히 있어봐야 절대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는 것.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작정하고 쌓아야 한다는 것. 정말 배워야 할 게 많다. 그러기엔 열정이 받쳐주질 않는다.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정말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찾았다. 이제는 물러날 때가 아닌가? 공부와 성취를 통해 얻는 개인적인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내 스킬을 다시 한번 새로운 방향으로 작정하고 쌓아봐야 하지 않을까?
세 가지의 커리어
일본에서 완벽히 다른 분야의 세 가지 커리어를 쌓으면 밥 굶을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이론이 나왔다. 후지와라 카즈히로(藤原 和博)라는 분이 이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크게 공감한 내용이다. 대략 한 분야에서 '1만 시간'을 투자하면 나름 괜찮은 성취를 할 수 있는데 이는 대략 하루 세 시간씩 10년이다. 25~35세, 35~45세, 45~55세. 합쳐서 30년에 세 분야. 뭔가 두근거림을 느낀다. 다음 십 년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 여행 콘셉트로 잡으려 한다. 다음 십 년 뭘 하며 살지 찾아보는 여행.
요즘 들어 그럴싸한 글을 몇 번이고 썼다가 지우 고를 반복했다. 마치 큰 뜻이 있어서 그만두는 듯 보이고 싶었나 보다. 사실 큰 뜻은 없다. 쉬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고 다른 일이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제는 사표도 냈고, 뒤는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다.
선배님들의 말씀으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네
- 티베트 속담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너무 걱정하지 마.
괜히 고민해봤자 도움이 안 돼.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거고, 세상은 살아가게 되어 있어.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마음이 현재에 있어야 행복하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하다.
- 미상
삶이란 오직 지금 이 순간, 즉 현재라는 찰나의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현재다.
당신이 진정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당신이 이 순간을 놓친다면 결국 삶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 석가모니
© 2021. Am Morgen. CC BY-NC-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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