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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일상

삿포로에 살아보고 느낀 것들 (겨울 & 봄)

by 추쿠아비 2021. 5. 13.

이 글은 2018년 6월 15일에 작성되었습니다.

2017년 12월부터 2018년 5월까지(6개월)

음식 편

  • 스프 카레가 명물은 명물이다
    사실 처음에 먹고 실망했었다. 가게마다 특색이 있어서 여러 곳을 다니며 먹다 보면 어느새 중독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좀 쌀쌀하다 싶으면 스프 카레가 생각나고 땅긴다.
  • 유제품이 기가 막히게 맛있다
    길을 걷다가 가끔 사서 먹는 아이스크림이나 크림치즈, 버터가 가미된 간식이 기가 막히게 맛있다. 맛이 깊고 진하고 풍부하다. 다른 지역과는 품질이 다른 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르타오 치즈케이크도 옆 동네 오타루에 본점이 있다.
  • 징기스칸은 흔해서 잘 안 먹게 된다
    양고기를 구워 먹는걸 징기스칸이라고 하는데 어디를 가도 메뉴에 징기스칸이 있다. 심지어 벚꽃 축제를 하러 가도 야외에서 징기스칸을 구워 먹는다. 벚꽃이 피기 몇 달 전부터 벚꽃 축제에 친지, 동료들과 함께 징기스칸 파티를 하기 위해 계획하기 시작한다. 처음 삿포로에 왔을 때, 삿포로 하면 징기스칸이지 하면서 한번 먹어보고 이후로 먹어본 적이 없다. 어디를 가도 '모처럼인데 징기스칸을 먹을 순 없지'라며 다른 메뉴를 선택하게 된다.
  • 해산물이 신선하고 맛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해산물에서 이건 원래 이런 향이 나지라며 먹던 그 향이 알고 보니 잡내였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분명히 많이 먹어봐서 알고 있던 맛의 생선인데 여기서 먹어보고 '이게 원래 이런 맛인가?' 새삼 다르게 느낄 때가 있다. 원래 비린 줄 알았던 해산물도 전혀 비리지 않음에 놀란다. 심지어 슈퍼에서 파는 초밥조차 내용이 실하다.
  • 대체로 음식이 맛있다
    확실히 도쿄, 오사카에 있을 때 보다 음식점의 음식 수준이 높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식감과 냄새가 크게 작용하는데 어차피 조리되면 비슷하지 않나 싶으면서도 막상 먹어보면 뭔가 깊은 맛이 느껴진다. 아마도 재료가 좋아서가 아닐까 싶다. 요리하는 분의 실력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전국구 체인 음식점에서도 맛의 차이가 느껴지기 때문에 역시 재료가 아닐까 생각된다. 집에서 만들어 먹어도 만족도가 높다.
  • 의외로 식자재 가격이 평균적이다
    홋카이도는 흔히 일본에서도 물가가 싸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나도 하더라 통신에 속았었는데, 사실 평균을 내보면 싸지도 않은 것 같다. 홋카이도에서 생산되는 양파나 감자 같은 건 신선하고 싸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은 도쿄, 오사카보다 비싸다. 가끔 배추나 파가 비싸서 살지 말지 고민할 때가 생긴다. 아마도 유통과정이 다른 곳보다 길어서 그런 것 같다.

by Unsplash.


생활 편

  • 세이코 마트 (Seico Mart)가 엄청나게 많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지역 밀착형 편의점이 있다. 엄청나게 많기도 하고 홋카이도산 우유, 야채, 과일도 판다. 24시간이 아니고 자정 전후로 문을 닫는 점포도 많다. 편의점 안에서 조리하는 곳이 많다. 다른 지역은 보통 조리된 것을 운송해와서 파는데 운송이 어려워서인지 직접 조리해서 파는 곳이 많다. 점포, 지역 특별 메뉴가 있는 곳도 있다.
  • 인구밀도가 낮아서 붐비는 곳이 별로 없다
    홋카이도 면적은 우리나라 3분의 2 정도인데 인구가 600만밖에 안된다. 삿포로를 벗어나면 웬만해선 줄 서는 경우가 잘 없다. 내가 사는 동네는 삿포로 돔이 있어서 콘서트, 축구, 야구 시합이 있으면 사람이 많아진다.
  • 거리 감각이 너그럽다
    내 감각에 100km는 먼 거리인데 여기서는 가까운 거리로 표현될 때가 많다. 길을 가다가 스타벅스 간판에 화살표를 표시해놨는데 밑에 '4km 앞' 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보통 이삼백 미터 반경에 붙여놓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 동네에 살아보니까 4km 앞에라도 있어 줘서 고맙게 느낄 때가 있다.
  • 공원이 정말 많다
    다 어떻게 관리하나 싶을 정도로 공원이 많다. 작은 공원은 길을 걷다 보면 거의 5분에 하나씩 보인다. 큰 공원은 들어가면 대자연이 펼쳐진다.
  • 길에 사람이 별로 없다
    다들 지하로 다닌다. 지하도가 엄청나게 잘되어 있고 사람도 엄청나게 많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대체로 관광객인 경우가 많다.
  • 제설차가 정말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제설차 소리가 익숙해져서 신경 안 쓰면 소리가 안 들린다. '제설 안 하나?' 하고 주의를 기울여보면 아득~히 먼 곳에서 제설차 소리가 들린다. 세상은 누군가의 수고(일)로 이루어져 있다(世界は誰かの仕事でできている: 일본 커피 CM)라는 말에 깊게 공감하는 순간이다.
  • 사실 길이 엄청 넓다
    겨울에 이사를 와서 처음 본 삿포로 주택가의 인상은 한마디로 '좁다' 였다. 제설하면 눈을 도로와 인도 사이에 쌓아 두는데 쌓인 눈의 높이가 사람 키만큼 된다. 집 앞은 물론이거니와 도로도 너무 좁다는 인상을 받았다. 눈이 녹고 나서야 처음 알았다. 집 앞 골목이 자동차 도로였고 엄청나게 넓다는 것을. 홋카이도 자체가 워낙 큰 섬이다 보니 토지만큼은 사치를 부리는 동네다. 건물을 띄엄띄엄 여유를 두고 짓는데 겨울에는 그 틈이 눈으로 메워져서 좁아 보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 한 번은 넘어지게 되어 있다
    조심해서 걷는다고 걷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미끄러져 넘어진다. 한번 넘어졌던 곳을 지날 때 미끄러우니까 조심해야지 하면서 또 넘어진다. 내가 어제 저기서 넘어졌는데 하면서 가다 보면 다른 사람도 거기서 넘어진다. 땅이 사실은 땅이 아니고 눈이 얼어있는 빙판이다. 그 위를 차도 사람도 다닌다.
  • 부츠를 사서 신는다
    눈길에 미끄러지고 신발이 젖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능성 신발을 찾게 된다. 처음에는 부츠가 거기서 거기지 하면서 대충 사서 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츠의 우수성에 감탄하게 된다. 전철을 타면 메이커와 디자인의 다양성에 새삼 놀라게 된다. 부츠를 고를 때 디자인과 기능성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 여행객보다 옷을 얇게 입는다
    어디를 가든 실내는 난방이 아주 잘되어 있다. 현지인들은 외부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완벽한 방한 복장이 아닌 사람이 많다.
  • 자동차가 극지방 사양으로 생산된다
    차를 잘 몰라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양인지 모르지만, 극지방 사양으로 판매된다고 한다. 다른 지방에서 사륜구동이 나오지 않는 모델도 사륜구동으로 생산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by Pixabay.


환경 편

  • 일조량이 적다
    12월, 1월에는 오후 3, 4시면 해가 진다. 그리고 해가 늦게 뜬다. 눈이 내려 흐린 날도 많아서 우울해지기 쉽다. 그래서 축제가 매달 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축제라도 없으면 적막하고 분위기가 한없이 가라앉을 것 같다.
  • 눈이 정말 많이 온다
    이렇게 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온다. 제설을 해주는데도 자고 일어나면 제설하기 전만큼 또 쌓여있다. 조금만 교외로 나가도 사람 키보다 높은 눈의 장벽을 볼 수 있다. 가끔 눈이 안 와서 겨울임에도 깨끗하게 제설된 길을 보면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 눈이 내릴 때는 덜 춥다
    눈 내리는 날이 오히려 고요하고 따뜻한 느낌마저 든다. 눈 안 내리는 쾌청한 날, 하늘이 높고 푸르른 날이라면 찢어지는 듯한 추위를 느낄 수 있다.
  • 눈이 녹기 시작하면 짜증 난다
    어중간히 녹아서 샤베트 상태가 되면 흙탕물이 생기고 여기저기 튀고 동네가 더러워 보인다. 걸을 때도 짜증 나고 차를 타도 짜증 난다. 눈이 다시 얼게 차라리 추운 게 낫다고 느끼기도 한다. 거기다가 매일 같이 눈이 내리는데 이게 밤에는 얼고 낮에 녹기를 반복한다. 이때 본격적으로 아스팔트가 깨지기 시작한다. 밤에 얼면 팽창돼서 깨지고 낮에 녹았다가 다시 깨진 틈으로 물이 들어가서 밤에 다시 얼어서 깨진다. 그러면서 도로에 엄청나게 큰 구덩이가 생긴다. 운전할 때 정말 위험하다. 시, 구청에서 모래주머니를 트럭에 싣고 다니면서 구덩이에 넣어서 메우는데 땅덩이가 워낙 커서 한계가 있다.
  • 바퀴벌레가 없다
    모든 걸 차치하고 삿포로로 와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바퀴벌레를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홋카이도에는 바퀴벌레가 없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반신반의 중이다. 주위에 물어봤는데 심지어 태어나서 바퀴벌레 실물을 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꽤 있었다.

by Unsplash.


※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정리한 것으로 일반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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