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크리에이터가 알아야 할 97가지 Part.2 - 첫 번째 이야기
by - 新 清士 (신 키요시)
언론인(게임, IT),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IGDA JAPAN 대표직을 수행했고 지금은 명예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리츠메이칸 대학 영상 학부에 비상근 강사로 근무 중이다. 주로 게임 산업의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취재하여 일본 경제 신문 전자판(日本経済新聞電子版)과 비즈니스 패미통(ビジネスファミ通), 주간 아고라에 기고 중이다. 저서로 '게임산업의 흥망(ゲーム産業の興亡)'이 있다. 지금도 도쿄 게임쇼에서 인디 게임 국제 프레젠테이션 이벤트 "센스 오브 원더 나이트"의 기획,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셀프 출판 작가를 지원하는 사이트인 요무네코(よむ ネコ)의 주인장이다.
내가 게임 개발자 전문 콘퍼런스인 GDC에 처음으로 참여한 것은 2001년 봄이었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렇게까지 게임 개발에 관한 정보를 낱낱이 공개해도 되는 건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특히 윌 라이트의 '심즈' 프레젠테이션을 잊을 수가 없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AI와 유저 커뮤니티 형성의 기초적인 사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
당시 GDC는 샌프란시스코의 모스콘 센터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산호세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었다. 참가자는 5~6천여 명 정도 규모로 생각된다. (2013년 현재는 약 2만 명) 일본어로 된 정보는 아예 없었고 지명도도 거의 없었다. 정보가 하나도 없었지만 어찌 됐든 일단 가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현지로 향했다.
그리고 취재해보고 확신한 것이 있었다. 일본의 게임 산업이 지금 이대로라면 유럽과 미국의 놀라운 이노베이션 속도에 곧 따라 잡힐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당시 일본 게임회사는 세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GDC에서는 일본 게임이 왜 재미있는지 활발히 논의되고 분석되고 있었다.
2001년 전후는 게임계에서 아주 중요한 해로 일본의 가정용 게임기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가 북미의 게임 산업에 따라 잡힌 해이기도 하다. 그 후, Xbox의 등장으로 인해 PC 업계 기술이 가정용 게임기의 기술로 응용되며 유럽과 미국 기업이 점점 세력을 늘려 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서양 게임은 완성도가 낮다"라고 바보 취급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일본 게임 회사들은 "다른 회사와 정보 교류를 하지 말라"라는 지침이 내려오던 폐쇄적인 시대였다.
저명한 도시 문화 연구서인 "Regional Advantage(지리적 강점)"에서는 컴퓨터 개발의 선두주자 지역이었던 동부의 보스턴이 왜 서부의 실리콘 밸리에 지게 되었는지가 자세히 다루어져 있다. 저자는 중요한 요인으로 폐쇄적인 문화를 가진 보스턴에 비해 실리콘 밸리의 활발하고 개방적인 기술 커뮤니티를 가진 지역 문화를 강점으로 들고 있다. 업계 단체의 회합, 업계 회의, 트레이드 쇼와 취미 모임까지 공식, 비공식 다양한 모임이 정보교환의 장이 되었다. 이것이 때론 경쟁을 낳고, 때론 협력으로 이어짐으로써 이노베이션을 가속하고, 기술에 대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기업과 조직을 만들어낸 것이다. "패미콤" 탄생으로부터 불과 5년 후인 1988년에 시작된 GDC도 이 문화에 영향을 받았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한편, 2001년 당시 일본에서는 이러한 적극적인 정보 교환의 장소가 거의 없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CEDEC(CESA 디벨로퍼즈 콘퍼런스, 2011년부터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디벨로퍼즈 콘퍼런스로 명칭 변경)는 같은 업계 단체인 CESA의 회원 기업조차 그 존재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내 안에서는 일본에서도 개발자 커뮤니티가 하루빨리 자리 잡지 않으면 일본은 그만큼 뒤처진다는 막연한 조바심이 생겨났다.
다음 해 GDC에서 게임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인 IGDA를 알게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 지부 조직을 확산하려던 시기였다. GDC 연차총회에서, '국제'라는 단어가 언급되었을 때 "일본은 어떻게 되느냐"라고 당시 최고 책임자였던 제이슨 델라 로카에게 물었더니 "누가 해줄 수 없겠느냐"라고 역으로 제안을 받게 되었다. 당시의 나의 어학 실력은 형편없었고 서투른 영어로 "내가 해볼게"라고 맡은 것이 IGDA JAPAN의 시작이었다.
시작 초기에는 "이런 커뮤니티가 성립될 리가 없다"라고 비난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이 참여해주었고, CEDEC와 도쿄 게임쇼, DiGRAJAPAN과 후쿠시마 GameJam 개최 등 다양한 형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직으로 발전했다. 그 몇 년간의 경험 축적을 통해서 IGDA의 전 세계의 지부 중에서도, IGDA 본부로부터 "슈퍼 챕터"라고 불리는 존재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IGDA JAPAN은 새로운 운영팀으로 바뀌었지만, 앞으로도 많은 사람과 협력하며 게임 산업의 발전을 위해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 일본에서도 많은 개발자 커뮤니티가 당연한 듯 존재하고 있다. 그 다양성을 통해 이노베이션은 가속화되어 일본의 게임 산업은 발전할 것이다. 커뮤니티는 경쟁력의 원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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